청년경찰과 조지 플로이드
영화 ‘청년경찰’이 개봉한 지난 2017년 대림동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와 지역주민 60여명은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인격권, 평등권, 행복추구권의 침해와 절망감ㆍ공포감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 것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에서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지만, 올해 3월 16일 항소심 법원은 원고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하도록 하는 한편, 제작사에는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도록 권고하였다. 제작사측은 이에 응해 4월 1일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였고, 원고들도 청구를 포기해 모든 절차가 끝났다. 영화 ‘청년경찰’을 두고 이어진 긴 법정다툼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영화 ‘청년경찰’은 조선족 동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대림동을 경찰도 포기한 범죄의 소굴로 묘사하거나 조선족 동포를 비인간적인 범죄집단으로 표현하는 등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차별적인 소재를 활용하였다. 영화에서 긴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그 공간의 분위기와 그 사람들의 성격이 납득되었다면 이러한 차별적인 소재가 우리 안에서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고민이나 성찰 없이 차용한 차별적인 소재로 인해 이 영화가 편견과 혐오를 더욱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사건의 원고들 중에는 이 영화의 상영 이후 동네에 대해서 언급할 때 위축된다는 지역주민들도 있었다.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영화 이후에 조선족 동포들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절망과 공포를 다시 느껴야 했다.
영화 ‘청년경찰’은 소수자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가볍게 다루었다. 사실 영화 ‘청년경찰’ 이전에도 ‘어느 동네, 어느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나 편견은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편견과 혐오의 확산으로 인해 불안해 하거나 공포심을 느낄 사람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리지 않고, 이들을 물리치는 과정을 코미디나 통쾌함의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소수자의 공포를 웃음거리나 통쾌함으로 삼는 것은 그 자체로도 폭력이지만, 폭력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5일 미국에서는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경찰이 무릎으로 압박하여 살해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에게 숨을 쉴 수 없다며 살려달라고 말했지만 경찰들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소수자의 불안과 절망, 공포를 무겁게 여기고 이들과 이들이 있는 곳을 더욱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꽃을 꺾듯 사람을 꺾고, 돌맹이를 발로 차듯 사람을 발로 차게 될지 모른다.
어쨌거나 재판은 마무리되었지만 영화 ‘청년경찰’ 이후에도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조선족 동포나 대림동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이 꽤나 눈에 띈다. 코미디나 드라마 등의 창작물이나 유튜브 등의 미디어에서 대림동을 무법지대로, 조선족 동포를 우범집단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여전히 심심찮게 발견된다. 심지어 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는 그것을 예방하거나 억제하지 못한 행정력이 아닌 조선족 동포의 책임으로 전가된 지 오래다.
미네소타 경찰이 무장하지도 않았고 물리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았던 시민, 조지 플로이드에게 과도한 강제력을 행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살인 사건 이면에 흑인은 거칠고 폭력적인 우범 계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다른 인종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인식과 의사도 작동하였을 것이다. 소수자는 이렇게 근거 없이 왜곡된 소문과 혐의를 재료로 발명되고 있다. 심지어 고인이 사망한 이후에도 언론 등은 흑인인 시민에게 거친 폭도,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위협적인 사람들이라는 혐의를 씌우고 있다. 우리가 지금 조선족 동포와 대림동에 씌우고 있는 혐의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제작사가 원고들에게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은 여러 고민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들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 사건 이후에도 혐오와 차별을 멈추지 않고, 타인의 공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왜곡된 혐의를 소수자에게 뒤집어 씌운다면, 어느 날 청년경찰이 대림동에 나타나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
언론사에서 기고글 보기 : [‘친구’의 수요법률살롱2] 제5화. 청년경찰과 조지 플로이드 – 마한얼 변호사
담당 변호사 마한얼 (02-6200-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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