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자립생활과 시설 폐쇄법
– 다 함께 살기 위한 법을 만듭니다 –
이주언 변호사
1. 탈시설이란 무엇일까요?
탈시설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설에서 나온 제 지인은 뇌병변 장애가 있습니다. 지인에게 시설에서 나오니 무엇이 제일 좋냐고 물었을 때 그는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술 한잔 마시고 싶을 때 술도 마실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활동지원, 주거, 소득, 보건 등에 대한 고려 없이는 탈시설이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말한 제 지인은 시설에서 나온지 몇 달만에 “외로워서 죽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외딴 섬처럼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흘러 야학을 나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집회 현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높이게 된 이후에야 그 친구는 진짜 탈시설에 성공하였습니다. 탈시설에는 많은 것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2. 탈시설을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요?
우리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은 권리일까요? 권리가 아니라면 국가는 장애인, 치매 노인처럼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시설에서 살게 할 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게 할 지 적절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시설을 권리라고 본다면, 국가가 임의로 장애인들에게 시설에서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탈시설이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탈시설과 자립의 권리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와 함께 제37조 제1항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이동 및 거주의 자유를 제한⋅박탈⋅구속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30조 제3항).
국제법적으로도 탈시설은 하나의 권리로 인정됩니다. 장애인권리협약(CRPD)에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장애인이 거주지와 동거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특정한 주거형태를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활동보조를 포함하여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 지원서비스 등에 접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19조). 누구도 시설이라는 특정한 주거형태에서 살라고 강요할 수 없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권리가 실현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정부가 현재 탈시설에 맞추어 추진하는 정책은 시설의 소규모화 정책입니다. 하지만 시설을 쪼개어도, 형태를 바꾸어도 여전히 시설입니다. 크고 작은 시설에서 인권침해는 계속 문제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탈시설-자립지원”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한만큼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탈시설 지원정책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 입장에서는 탈시설이 무엇인지, 이후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탈시설이 가능한 장애인에게는 그에 맞는 지원계획이 수립되고 적극적인 지원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센터가 지역마다 설치되어야 합니다.
탈시설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법률가들과 장애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져도 국회에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 긴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담당행정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예산을 결정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부터 힘을 모아주어야 합니다.
4. 글을 마치며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해서 생활의 불편이 많습니다. 시설 안팎의 장애인들은 더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장애인 거주시설이 사회복지서비스의 최후의 보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탈시설 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세요. 다 함께 살기 위한 법이니까요.
*위 글은 2020년 9월자 제2회 대구지역 장애인 탈시설 증언 기록집 <삶, 그 발걸음을 남기다>에 실렸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